e스포츠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문성민 대표.
군 복무로 공백기를 겪으면서 은퇴를 결심했고,
귀농해 농사를 짓던 어머니를 보며 농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농사라고 하면 구슬땀 흘리는 농부의 모습 정도로만 알았던 그지만,
정보를 찾아 공부할수록 현대의 농업은 첨단기술화,
체계화가 돼있어 사업으로 키울 수 있는 미래산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예비청년창업농을 위한 다양한 교육과 지원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길은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많은 20대, 승부수를 던져보자’고 결심한 그는 곧바로 농사라는 현실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전략, 전술을 그의 사업체 ‘토이팜’에 적용하며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다.
◎ 수영 선수에서 프로게이머, 그리고 농부로
수영 선수로 물살을 가르던 소년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e스포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더니,
이제는 흙냄새 물씬 나는 들판에서 미래농업을 꿈꾸고 있다.
경남 창녕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키우는 문성민 대표의 이야기다.
“중학교 때 수영 선수로 활동했는데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중단하게 됐어요.
줄곧 운동만 해오다 보니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학업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죠. 오랫동안 방황했어요.”
갑작스러운 부상은 어린 소년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주말이면 그저 PC방에서 ‘오버워치’ 속 게임 세상에 파묻히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참가한 아마추어 게임대회에서 깜짝 성적을 내며 e스포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지역 예선을 휩쓸고 전국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단숨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어 프로팀의 입단 제의도 들어왔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부모님 뜻에 따라 프로팀 입단을 미루고
2018년 전남과학대학교 e스포츠학과에 진학했어요.
그리고 1년 후, 서울의 프로게임단에 입단하며 선수의 꿈을 이뤘죠.”

(프로게이머 시절의 문성민 대표)
프로게이머로서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팀 성적도, 개인 기록도 상위권. 연봉도 넉넉했고,
학교 수업은 프로팀 합숙으로 학점을 대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찾아온 공백기,
그 사이에 ‘인터넷 가상세계’에 대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이게 과연 오래 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생활의 만만치 않은 주거·생활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까지 녹록지 않았고요.”
군 제대 후 그는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진로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e스포츠 감독, 해설위원, 사회복지사…,
그러다 10년 전 귀농하신 어머니를 보며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보를 찾아보면서 ‘벼를 심고 수확하는 농부의 모습’만이
농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농사 시스템에 대해 잘 몰랐는데 농사에 첨단 재배 기술을 적용하고 상품을 브랜딩하고,
체계적 유통시스템을 활용하면 전략에 따라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술과 창의력을 더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미래 산업이었던 거죠.
특히 청년 귀농 희망자들을 위한 교육이나 임대 하우스 지원 등도 꽤 잘 돼 있었어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자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는 귀농을 결심했다.
게이머 시절 갈고닦은 전략과 감각은 이제 농사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또 한 번의 가능성을 시험받게 됐다.
◎ '요즘것들'과 함께한 첫걸음, 귀농의 밑그림을 그리다
어머니가 귀농한 경남 창녕으로 내려와 본격적인 귀농 준비를 시작한 그는,
우선 창녕군에서 운영하는 ‘창녕생태귀농학교’에 참여했다.
거기서 만난 또래의 2030세대 귀농인들과의 만남은 단순한 정보 교류를 넘어,
시골살이의 든든한 동료를 얻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그들은 ‘요즘것들’이라는 이름의 지역 청년단체로 뭉쳤다.
이름부터 당차고 인상적이었다.
“귀농 전에 자주 들었던 말이 ‘농촌에는 청년들이 할 일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와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문 대표의 말처럼, ‘요즘것들’의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딸기, 가지, 오이, 마늘, 표고버섯을 키우는가 하면,
소를 기르는 이도 있고 국수를 만드는 친구도 있었다.
“귀농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한 친구들도 많았어요.
작물 선정부터 유통 전략, 브랜드 기획까지요.
덕분에 저도 정말 많이 배웠고요.”
그 역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떤 작물이 나와 성향이 맞고,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선택한 작물은 완숙토마토와 가시오이. 키우는 재미는 물론,
품질에 따라 가격 경쟁력이 뚜렷했고,
건강한 식재료로서의 브랜딩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 그를 끌어당겼다.
“가시오이는 시장성이 안정적인 데다, 토마토 수확이 끝난 직후 바로 이어서 재배할 수 있어요.
땅을 놀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연작할 수 있는 점이 큰 장점이죠.”
그리고 그는 이 두 작물의 조합에서 농장 이름도 떠올렸다.
바로 ‘토이팜’이다. 토마토의 ‘토’, 오이의 ‘이’를 따 만든 이름으로,
부르기 쉽고 기억에도 잘 남았다.
여기에 장난감(toy)처럼 재미있고 유쾌한 농장이라는 의미도 담을 수 있었다.
◎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농장, 토이팜의 브랜딩 전략
첫 농사는 경남 창녕의 2,314㎡(700평) 규모 임차 하우스에서 시작했다.
청년 농부답게 출발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토마토 줄기와 잎이 검게 물들며 병들어 가던 때, 그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 갔다.
바이러스와 병충해, 작물 생육 불균형…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농사는 배운 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농사=시뮬레이션’이라는 환상을 깨달아야 했죠.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복잡했어요.”
다행히 어머니와 선배 농부들의 도움으로 상황은 차츰 안정됐다.
그러자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팔아야 한다.’ 어머니는 줄곧 공판장을 활용했지만, 그는 다른 길을 모색했다.
유통 단계를 줄이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직거래’를 선택한 것.
하지만 그 길도 쉽진 않았다.
가격 책정, 포장, 고객 응대 등 모든 게 생소하고낯설기만 했다.
문 대표는 직접 발로 뛰며 하나씩 배워나갔다.
창녕 장터 등 지역 로컬 유통망을 찾아 돌아다니며 감을 익혔고,
고객을 만나면 늘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이가장 익숙했던 무기를 꺼냈다. 바로 인스타그램(@toy99s).
프로게이머 시절 자주 활용하던 SNS 채널을 농장의 소통 창구로 바꿨다.
작물의 생장 과정, 농장의 일상,
고군분투하는 청년 농부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팔로워들과 직접 소통했다.
그는 DM을 통해 직접 주문을 받고, 마트보다 저렴한 가격과 직배송을 내세웠다.
포장부터 택배 발송까지 전 과정을 농장주 본인이 직접 책임진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큰 신뢰를 안겨줬다.
모양이 고르지 않거나 크기가 작아 판매하기 어려운 토마토는
즙으로 만들어, 2.5㎏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덤’으로 제공해 만족도를 높였다.
리뷰를 남긴 고객에게는 1,000원을 캐시백해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전직 프로게이머의 재치가 더해진 ‘덤’ 홍보 전략에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팔로워는 1,200명을 넘어섰고, “정말 감동이에요!”와 같은 댓글,
300개가 넘는 ‘좋아요’가 자연스러운 마케팅 수단이 됐다.
온라인 판매도 빠르게 확장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개설과 창녕·마산·창원 등 인근 지역 공략을 위한 당근마켓 입점까지.
‘당일 오전 수확, 오후 배송’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신선도를 앞세운 결과,
지역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비록 재배 면적이 작아 수확량이 제한적이었지만,
토이팜의 진심은 통했다.
약속한 날짜에 배송하지 못하고 늦어질 때도 화를 내며
취소하기보다 기다리겠다는 고객이 많아졌다.
“아이에게 먹일 건강한 토마토를 찾는다며
직접 농장까지 찾아오는 젊은 엄마들도있어요.
임신한 딸에게 보내겠다며 방문하는 어머니들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께는 더정성껏 포장해 드립니다.”
장터에서도 하루 평균 50박스 이상이 꾸준히 판매되고,
학교와 병원 등 고정 거래처도 생겼다.
특히 병원은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갖고 있어,
그곳에 납품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은 커졌다.
“지역 종합병원에 직접 배송 가면, 간호사님들이
‘진짜 맛있다’며 ‘엄지 척!’을 해주세요.
그럴 때마다 ‘정말 귀농하길 잘했구나’ 싶죠.”
서울에 올라갈 땐 예전 소속팀에도 들른다.
팀 동료들과 구내식당 조리사까지, 이제는 모두토이팜의 단골들이다.
그리고 맞이한 귀농 2년 차.
직거래 유통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장터·온라인을 아우르는 판로를 개척한 결과,
올해는 작년 대비 매출50~60%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 농장을 넘어 마을의 명소로… 지역과 함께 자란다
문 대표는 지난 3월에 ‘창녕군 귀농귀촌 동네작가’로도 선정돼 활동 중이다.
농사로 바쁜 와중에도 창녕군 지역 소개, 농촌에서의 생활, 명소 탐방 등
매달 2~3건의 다양한 콘텐츠를 귀농귀촌 플랫폼 ‘그린대로’에 업로드하고 있다.
동네작가 활동을 통해 창녕군으로 귀농한
2030세대 농부들의 활약상과 지역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유채꽃 축제 등 창녕에서 열리는 축제에 오시면 항상 ‘토이팜’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창녕군의 지역 살리기 장터인 ‘우따장(우포 따오기 장터)’에 나가 보면,
요즘은 저를 알아봐 주시는 지역 주민들도 꽤 많아졌어요.
토이팜도 알리고 지역 행사도 콘텐츠를통해 알릴 수 있어 좋아요.”
초반부터 땅을 놀리지 않는 작물 선택,
SNS를 활용한 활발한 고객 소통, 지역공략을 위한 당근마켓 입점까지,
전략적으로 접근해 비교적 빠르게 고지에 오른 토이팜은 ‘몸집 불리기’에도 나섰다.
인근에 3,306㎡(1,000평)의 땅을 새로 마련한 문 대표는
내년에 토이팜 연동하우스를 지어 6차산업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 농장을 창녕군의 새로운 농산물 체험농장이자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농업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단순히 농산물의 생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것들’의 청년 농부들과도 협력하면서 ‘로컬푸드의 활성화’라는 지역의 꿈도 이루고 싶어요
토이팜에서 농업과 체험, 가공, 유통을아우르는 종합 농업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갈 겁니다.”